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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번역] Wonderful gift 9(과거로 대화하는 법)

wonderfulgift 2025. 1. 13. 01:51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면

십수 년이 지나도

 

여전히 우리를 반겨주는

한결같은 존재들이 있다.

 

 

과거 그 당시 나를 떠올리며

동시에 시간이 지난 후 성장한

현재의 나를 바라보며.

 

불현듯 발생하는

두 심상 존재의

이견을 바라보며

색다른 경험을 지니곤 한다.

 

시간이 지나도

아이스크림 본연의 가치는

바뀌지 않지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마치 당연한 것처럼

관점이 달라져야만

성장하거나 발전했다는 것이

증명된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때론

한결같음을 벗어나야만

삶에 비전이 있는 것처럼

생각해 보려 한다.

 

이것은 진화의 걸음일까.

아니면 그저 경우의 수일까.

 

한결같고, 정직하며 올곧은 걸음은

시대의 변화에 맞춰 대응하지 못하고

 

관점의 단일화만 강조하며

순응하는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일까?

 

 

사실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그 맛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한결같은 최고일 텐데..

 

 

동일한 방법이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 생각되어

 

진리에 기반한 법칙과 수식이 탄생하는

그러한 진화도 분명히 있을 텐데..

 

 

그러면서도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가볍게 스트레칭처럼 법칙에 저항해 보며

 

그런 방정식은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적용하면

“맛은 좋으나 기분은 별로야.”라고 말한다면

 

기분 좋게 생각하기 위해 결정짓는 법칙 이외의

 

개인 의견은 본인만의 방정식이라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객체가 바뀌면 언제나 통용되는 진리가 빠져있기에

 

그 의견의 수렴의 진행이 개인과 다수의 삶에 있어서

 

그다지 안전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럴 땐 과거의 나에게 묻는 거다.

 

 

 

살아보니 어떻더냐?

 

 

이성적 판단의

기초가 되는 교육은

 

꽤 안전한 결과를 내고

시스템을 구성하지만

 

법칙의 고찰 없이

개인적인 의견으로

 

그룹을 이끈 자들은

 

하나같이 의견은 다르면서

세상의 법칙에 의한 수혜는

 

다 받고서야 살아남지 않았더냐.

 

 

생존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나

주관적인 상호 간의 이견은

 

때론 법칙에 어긋나

위험을 자작하는 자들에게

 

합리화의 여지를

본인과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공백에서

 

이견을 줄이고 화합과 협의를 도모해야

한다는 개연성 없는 진리인 듯 보이는

 

어정쩡한 무언가에 의해

 

생존을 빌미로 타협점의 선택지를

 

선사하며 유혹한다.

 

 

그것이 연쇄되면

생존은 불리해지거나 불가능해지고

 

과거보다 이견만 많아지며

둘 이상의 인물들이

 

타협점을 상호가 찾는다 하더라도

그 타협점을 선택하지 않은

 

유혹되지 않은 자들과의 대립은 필연적이며

유혹될 확률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개인의 선택지에는 적정선이라는

공식적인 기준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생존본능을 뛰어넘지 못한 이성을 지닌 지성은

생존이라는 빌미로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를

 

판단하는 과정과 결과에 대한 고찰로 인한 결론이

진화의 과정이라 오해할 수도 있다.

 

 

아프지만, 때론 시대가 생존을

혹독하게 강요하면 대개 그렇게 된다.

 

 

그 적정선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불편하거나 선택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식별하고,

 

그런 고민과 선택지에 따른 어긋난 추진은

사회 질서를 결국 어지럽히기에

 

공식적인 전투에서는

그런 자들을 발견하고

 

선택지를 제안하되

 

위험을 유발하는 언행이

시간과 기회를 주어도 누차 반복되거나

 

굳어져 버린 사고 관념으로 인한 위험이 발견되면

어떤 형식으로든 수혜를 제한하거나

 

배척, 제압, 제어 등의 형태로 대응하지 않으면

그러한 선택지를 비공식적으로 허용한 것으로 판단될 수도 있다.

 

 

“애초에 가이드가 없는데 실수가 나올 수도 있지 않냐” 라는

듣기 거북한 합리화된 질문에 답변을 주기가 참 그렇다.

 

“가이드가 없어도 그 정도는 판단할 수 있지 않냐” 또한

고만고만한 비슷한 질문이다.

 

 

결론적으로

“가이드 = 진리”

 

우리는 그것을 알고도 그저 방관하며

탐구를 방해하며 그저 의미없이 분쟁한다.

 

 

사실상 에너지 아깝다.

 

작용은 항상 반작용을 수반하고,

 

작용이 어쩔 수 없기에

반작용 또한 어쩔 수 없다는

 

아전인수식으로는

가이드가 없다 보니 결코 안전이 보장되거나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성립될 수는 없듯이.

 

결국 그러한 가이드 또한 안전을 위한 시스템의

 

법칙 일부분이 계속 구성되며

만들어져 나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것이 역사의 가치 중 일부이다.

 

 

이미 그런 법칙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면,

시간에 따른 합리적인 절차에 따른

 

검토와 조치로 그 방향을

올곧게 걸어 나가면 그만이다.

 

생각을 조금만 해보면 현재를 포함한

 

어떤 미래를 살고 싶은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안전한 사회’로

 

대부분 만장일치로 귀결될 것이 예상된다면

 

이 주제의 결론에 망설일 것은 또 무엇이겠는가?

 

 

뻔한 결론이지.

 

그것이 아이스크림이

현재까지 맛나게 보전된 이유일 것이다.

 

뒤늦게 입장을 번복해도

실수한 과거의 선택지는 흔적을 남긴다.

 

그것은 번복되거나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과거로 타임슬립을 못 하니

 

인류 또는 개인의 철학적 관용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밖에 없는 강압과

 

그에 따른 사과와 용서,

현실적 복구 조치 및 그 과정에서의

 

상호 간의 이해심이

 

대단히 요구된다.

 

다만, 성공했던 선택지도 분명 흔적을 남기지.

 

그 성공과 실패의 결과가

 

개인의 성장과 발전의 지표라면

 

그것을 평가하는 본인의 시각은

 

실패를 숨기지 말고

 

엄격하게 반성하며 교정하고

 

그와는 별개로 성공률은 극대화해서

 

실수나 실패가 성공을 위한 과정으로

 

스스로 생각될 수 있도록

 

본인을 위해 영점을 맞추는 것이

 

미래의 그대가 과거가 될 현재의 그대와

 

대화하기가 수월할 것이다.

 

 

이러한 한결같은 관점을 지닌 자가

성공률을 올리며 개인의 복지를 향상하기 위한

공동의 과제 목표 달성을 위한

명중률을 상승시키면

발전하고 성장하며 함께 진화한다.

 

성과는 올바르게 공유되고

선택지는 풍족해지겠지.

 

성과의 분배에 타협점의

합리화로 인한 편파 판정이 존재한다면

메커니즘에 따라 체계 전체의 근간이

흔들리곤 한다.

 

그것은 분명 꾸준히 쉽게 관측되므로

조정하면 그만인 부분이다.

 

 

한 아이스크림으로

여러 이견을 지니며 토론하는 것보다

 

여러 아이스크림을 맛보며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평화를 전제로 한 진화에는

조금은 더 근접하였다고 판단된다.

 

 

 

그대, 과거의 그대와 대화할 생각은 없는가?